홋카이도 에니와 생활 EP01 : 일본에서의 4번의 크리스마스

일상/홋카이도 2021.12.25 댓글 방동

목차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이 주제는 지금이 아니면 쓰지 못할 것 같아서 급하게 씁니다.

     

    크리스마스,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나름 다양한 방법과 방식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혼자서도 지내보고, 여자친구와도 지내보고, 일하는데 도중에 멱살도 잡힌 적이 있는.
    저의 일본에서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

     

     


     

     

    1. 2017년 크리스마스 - 멱살잡히다.

    일본에 온 지는 반년이 이제 되었고 일도 적응할 무렵이 됐던 시기입니다. 사실 크리스마스가 아닌 23일 이브이브(?)에 있었던 일 입니다.
    이 날 아침부터 인천공항에서 짙은 안개로 인해 제시간에 와야 할 비행편이 지연되어 결국 결항이 되며 제 공항서비스직에서는 첫 결항이자 인생 첫 멱살잡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에 사진이고 뭐고 남길 게 없었기에 업무 연락용 사진을...

    밤 8시 결항 확정을 지으며 180여명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항공사가 보상해주면 이럴 일이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기상에 의한 결항(재난재해, 천재지변)은 항공사의 귀책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용객들은 어떻게든 보상을 받아야겠고 납득할 결과를 얻기 위해서, 저희들은 그런 손님들을 설득하고 대응하는 전쟁.

    제3국 이용객이나 일본인 이용객들은 납득하고 기다려주었으나, 제일 비중이 많고 가장 불만이 많은 한국 관광객 분들. 자기 집에 제때 가지 못하는 점, 24일 출근이나 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못한다는 것. 왜 자기 비용을 들여 원치 않은 1박을 해야 하냐는 점.

     

    안 그래도 출근한 지 12시간이 넘어서 피곤하고 힘든데 차례대로 안내하고 하려는데도 참 말을 안 듣더군요. 솔직히 그 누구도 잘못한 게 없는게 그렇게 고성방가에 반협박식으로 따지고 드는 거 보고 참 회의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분이 제 보안패스 목걸이를 잡아 끌더군요. 지점장 나와라 매니저 나와라 그러면서 말이죠. 황당해서 어버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공항 경찰들이 지켜보더니 난동이나 폭행이 발생할까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 공권력이 있는 거구나 하며 새삼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결국 그날은 어찌저찌 설득해서 다들 내일보자는 식으로 마무리가 됐네요.
    아, 놀랍게도 24일에 결항 대체편을 마련해두니까 언제 언성 높이고 욕하던 사람인지 참 잘 웃으시며 가시덥니다. 살면서 잘못한 적이 없는데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멱살 비스무리하게 잡혀야 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유독 크리스마스 기간과 겹쳐서 더욱이 깊게 남는 기억입니다.

     

    결항 사건 이후의 27일날 신치토세공항 국내선 터미널



     

     

    2. 2018년 크리스마스 - 누군가와의 크리스마스

    2018년 크리스마스는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와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홋카이도 삿포로 하면 눈.
    삿포로에 있는 삿포로 팩토리 쇼핑센터에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웁니다. 어디에나 있을 트리라 생각하시겠지만 나름 크기도 크고 또 매년 어디서 진짜 트리용 나무를 가져다 만드는 것이라 점등식도 합니다. 모양이야 어딜가든 똑같지만 삿포로 팩토리 쇼핑센터의 조명과 일체가 되며 상당히 멋진 분위기를 연출해서 좋습니다.

    2020년에도 같은 디자인이지만 정말 주변 조명과 잘 어울려서 너무 예쁜 트리.
    일본에서의 제대로 된 첫 크리스마스.

    또한 일본은 한국보다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정성과 진심이 가득합니다. 케이크도 예약받고 케이크를 편의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날만큼은 비싼 케이크를 먹거나 사게 됩니다. 저 또한 케이크와 파티 음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3. 2019년 크리스마스 - 후쿠오카에서, 그리고 산타가 찾아오다.


    당시 NO JAPAN 운동 직후로 인해 신치토세공항으로 오는 이용객들이 대폭 줄어들며 반대로 일손이 부족한 지점에 파견을 나가야 했고 그 중에서 저는 12월에 후쿠오카로 출장 갔습니다. 당시 여자친구도 같이 가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못해 결국 홀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강제 원거리 교제로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가 했는데, 놀랍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홋카이도에서 후쿠오카까지 (비행시간 2시간 30분) 산타가 되어 날아와주었습니다. 서프라이즈 파티 해준다고 속임수도 썼지만, 쓸데 없는 때만 감이 좋아서 금방 알아챘지만 모른 척하고 맞이했습니다.

    직접 찾아와서 이것저것 선물도 주고 참 고마웠던 기억

    타지에서 타지점에서 홀로 있던 시간에 찾아와준 덕분에 힘이 되었고 또 나름 여행 분위기도 나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후쿠오카라서 캐널시티 쇼핑센터에서도 홋카이도에 없는 것들도 보고 지역 유명 요리도 먹고 뜻밖의 선물과 산타로 아마 가장 특별했던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습니다. 공항에서 바래다 줄 때는, 마치 영원히 못 만날 것 마냥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누군가 나를 위해 준비해주고 생각해준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고 감사할 일이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25일 저녁에는 혼자서 KFC. (참고로 일본은 크리스마스에 KFC를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4. 2020년 크리스마스 - 여러 생각이 함께한 소박한 크리스마스

    일본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코로나19와 함께한 크리스마스입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코로나 휴직으로 즐거움도 당시 기준 9개월이 넘어가니 즐겁기보다는 두려움이 커져가는 때였습니다. 또한 휴직으로 인해 급여는 기존의 60% 밖에 지급되지 않는 거의 기초생활수급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여자친구도 이해해주었고 무리한 데이트나 선물 교환은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초밥에 진심인 홋카이도는 이것도 점심매뉴로 2000엔에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연인간의 특별히 보내야 할 날인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먹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삿포로 근교인 오타루에 가서 초밥 먹고, 운하를 보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항상 북적였던 오타루 관광지도 매우 한산했고 그 때문인지 가게들도 일찍 문닫고 있더군요. 크리스마스임에도 코로나의 악영향과 안타까움이 함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관광객들을 위해 공사를 하거나 준비를 하는 모습도 있었기 때문에 데이트이기 보다는 바람 쐬러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와인글래스 타워(트리) 지진이 나면 어떡하나 조마조마.

     

     


     


    이렇게 보니 일본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이전 여자친구 덕분에 외로운 게 없었습니다. 또 직장의 특성상 남들이 놀 때, 일하는 서비스업종이었기 때문에 웃지 못할 어디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니, 전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건가요?' '이 사람 아직도 못 잊었네 ㅉㅉ' 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그냥 사실과 경험을 적었습니다. 솔직히 언급하지 않는 게 옳겠지만 그래도 있었던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순 없으니까요.

     

    아무튼!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2021년은 뭐라고 설명할 게 없는 그저 집에서 가족들과 있는 것 뿐이지만 2022년 혹은 그 훗날에는 일본에서의 크리스마스보다 더 좋은 기억과 추억이 함께 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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